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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anc(2010-03-02 14:11:00, Hit : 2082, Vote :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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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후기



‘그녀는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퍼시픽 콜로세움에 모인 사람들은 다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한 영국 언론)
‘It was too beautiful. You can cry. I’m so proud of you’(경기 끝내고 들어오는 연아를 맞아주며 오서 코치가)

몇년간 올림픽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연아는 ‘아무 색이나 좋으니까 메달 따고 싶어요’라고 했다. 올 시즌 전까지 금메달 소리를 하는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어떤 여자 싱글 스케이터 보다도 올림픽 금메달에 가까운 사람으로 꼽히게 되면서 본인이 느낀 부담은 어떠했을 것인가.
나만 해도 연아가 그저 건강히 올림픽을 치루면 되지 메달색은 상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작년에 드디어 압도적인 차이로 월드 타이틀을 따고 나니 올림픽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건 욕심 같은게 아니다. 즉 당연히 가져야 하고, 못 가지면 억울하고 분통터지며 무엇보다도 비극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에 이런 비극이 꽤 잦은 빈도로 발생한다는 것이고…미쉘 콴을 봐라. 당대 최고의 스케이터라고 칭송받았지만 3번 시도 끝에 올림픽 타이틀은 갖지 못했다(토리노는 개막식까지 참석했다가 기권). 하지만 ‘미국 여왕’인 미쉘 콴은 올림픽 정도 못 가져도 상관 없다. 그거 말고도 자기 증명할꺼리가 넘치고, ‘미국최고’면 어쨌든 세계최고 안 부러우니까. 하지만 연아는 어떤가. 올림픽 챔이 없으면 아무리 ‘사상 최고의 여자 싱글 스케이터’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점프를 뛰는 스케이터’ ‘빙판 위의 예술가’ 어떤 찬사를 들어도 그저 좀 잘하던 변방 스케이터 중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있나. 이건 연아 개인의 비극 뿐 아니라 피겨 스케이트의 비극이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금메달’이 아닌 다른 결과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씩 싹텄다.
그러나 역시 나같은 소인배와는 차원이 다른 우리 여왕님은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정하는거다. 지금까지 많은 이변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다.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금메달을 설령 못 받게 되더라도 큰 실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쇼트 때는 정말 온 몸이 식은땀으로 가득 찰 정도로 떨면서 봤다. 마오는 웬지 쇼트 잘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상대로 클린. 물론 연아가 실수만 안하면 당연히 넘길 수 있는 점수였지만, 나중에 화제가 된 그 표정이라니..뭔가 연아는 스스로 긴장이라도 풀듯이 ‘풋’하더니 나와서 뭔가 막 했다. 그리고 앗 하는 순간에 끝났다. 뭘 봤는지 모르겠다;;;;결과는 다시 역대 최고점 갱신. 쇼트 내용에 대해서는 글세..연아 최고점이긴 하지만 최고 퍼포먼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실수 없이 제 실력 발휘해서 제 점수 찾아갔으니 다행.

프리는 쇼트보다 훨신 편하게 봤다. 전날 공식 연습 중계를 보니 잡념이 없어 보이고 런 스루에서 점프만 체크하는데 모든 점프 상태가 좋더라고.
쇼트 전에 내가 예상한 점수는 셋 다 클린에 연아 76, 마오 73, 조애니 70으로 3점차이로 줄 세우지 않을까 하는거였다. 연아와 조애니는 저기서 조금씩 더 나왔지만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프리는 연아가 스텝 아웃 같은 작은 실수 하나 정도 해서 135, 조애니 클린해서 130, 마오 트리플 악셀 하나 인증 못받고 125 정도? 5점차이로 끝나서 연아-조애니-마오 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해 봤는데, 이건 완전 빗나감.
라우라 레피스토가 내가 본 중에서는 07년 스케이트 캐나다 이후 처음으로 3-3을 성공시키면서 126을 받더라고. 엇..이렇게 되면 뒷 그룹은 점수 확 올라가겠는데..그러나 더 이상 머리가 돌지 않는다..게다가 이제 근거도 없는, 말도 안 되는 내 예상따위 무슨 소용이냐..
연아 시작. 3-3 성공, 플립 성공. 이 때 아 오늘 되는구나! 싶었다. 후반 러츠 뛰고 나서는 99% 확신. 설마..오늘 클린 하는거냐! 클린 프리 프로그램, 그 아름다운 울림. 07년 러시아컵에서 (러츠 쫌 삐끗했지만 어쨌든) 하고 나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연아의 아름다우신 클린 프리 프로그램 님. 그걸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최고 형태로 올림픽에서 보게 될 줄이야! 완벽하게 통제된 기술과 움직임 속에서 유려하고 우아하게 흘러가는 이 쾌감이라니. 게다가 쇼트-프리 같이 클린한건 시니어 올라와서 처음이란 말이다! 4년만에 처음! 오늘 보여주려고 지금까지 아껴왔나. 이건 140은 당연하고, 과연 얼마까지 점수가 오를 것인가.. 점수를 보고 연아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마오 차례. 음 마오가 트리플 악셀 3번을 뛰어도 넘을 수 없는 점수.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트악 두개 착지..음 두번째 아슬아슬한데…앗 플립 실수. 이어서 토룹 팝.
솔직히 안심했다. 마오가 뭘 해도 톱으로 올라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이 상황에서 클린으로 2위가 되어 봐라. 지구 마지막날까지 승복 못하고 물고 늘어질 인간이 대략 1억명;; 마오의 실수는 메달 색을 바꾼건 아니었지만, 프로토콜을 보려 않는 대중에게 알기 쉬운 설명을 제공하고, 수 많은 사람을 3악셀과 3-3의 점수를 둘러싼 끝없는 논쟁의 지긋지긋한 개미지옥에서 구한 것이다. 고맙다, 마보살.

어쨌든 이번 올림픽의 피겨 순위는 종목 특성상 모든 이를 완벽하게 납득시킬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로 많은 이를 해피하게 할 수 있는 결과 아닌가 싶다.
금메달이 응당 가야할 주인에게 잘 찾아가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고, 마오는 어쨌건 3악셀 세번이라는, 본인이 가장 이루고 싶었던 ‘위업’을 달성했다. 개인적 불행을 메달로 승화해낸 선수도 두고두고 본인을 자랑스러워하리라.
한 나라의  페어를 일으킨 커플은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어 자기들 경력의 정점을 찍으며 아름다운 퇴장을 하게 되었고, 분루를 삼키던 또 다른 커플은 ‘최고의 연기’를 하고 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은 22년만에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따서 행복하고, 돌아온 영웅은 체면치레를 했으며, 인대가 끊어지는,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이기고 돌아와 감동적 동메달을 딴 이도 있었다.
아이스댄싱은 결과에 불만인 사람도 좀 있을거 같지만 난 예쁜 테사가 포디엄 꼭대기에 서서 기쁠 뿐이고…아름다운 돔니나가 좀 안되긴 했지만 그 프로그램은 좀 무리였다;;;근데 이번에 돔니나 커플이나 벨빈네나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의상이 왜 그런가; 리니슉 코치팀 다 이상했어.

아마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를 온몸으로 받고, 마지막에 울면서 인간선언을 하신 우리 연아님은..당장에 인간 잡사를 겪어야 하게 생겼다. 선수들이 입을 모아 ‘이기는 순간만 좋다’고 하더만-.-;; 이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 끝없는 자기와의 전쟁, 그리고 귀찮은 세속의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그럼에도 이 결과가 연아에게 좋은 것만을 가져다 주길 바라고, 앞으로 스케이트를 타거나 안 타거나 본인이 원하는 미래를 살 수 있게 되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이건 개막식 사진이지만…예쁜 테사. 카메라 맨이 보기에 제일 예뻤나보다.



hilda (2010-03-03 04:38:35)  
기다리고 있었어요! blanc님 올림픽 후기 ^^
저도 쇼트는 부들 부들 떨면서 봤는데 끝나고나서 어느때보다도 편안하게 했어요 하는거보고 뭔가 배신감이.. 아무리 김슨생이라지만 말이에요 ㅎㅎ 쇼트 프리 올클린을 올림픽에서 보게되다니, 여왕님은 그동안 아껴두신건가봐요. 이제 월드 끝나고 은퇴한다고 해도 전 여한이 없어요 흑흑
blanc (2010-03-03 10:36:03)  
저도 다른 경기보다 안떨렸다는 말이 배신감이-.-;;;;우리가 대신 떨어줬다고 생각합시다.
근데 말이죠..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자신을 믿으면 떨릴일이 없을 듯.
전 구멍 투성이 제 일을 보면 하늘이 깜깜해요.
첫비행 (2010-04-04 23:29:52)  
..보던 사람들이 다 대신 떨었던 거 아닐까요. 전 도저히 생방 볼 용기가 안 나서, (간이 철렁철렁 내려 않는 거 못 버티겠더라구요. 그리고 꼭 제가 보는 국대 경기들은.. OTL) 보지도 못하고 버들버들 떨고 있었는걸요.
sena (2010-04-20 10:00:15)  
쪽지 드렸어요. 확인 부탁드려요~
sena (2010-04-21 10:49:55)  
다시 쪽지 드렸어요. 늘 감사드려요. :-)
sena (2010-05-21 13:08:26)  
또 쪽지를 보냈답니다. :-)
sena (2010-06-15 23:31:08)  
전 전에 말씀드린대로 이번 주말에 갈 예정이니 시간 되시면 밥이라도 한끼 먹어요. 저는 19일 토요일 점심이나 21일 월요일 점심때 시간이 괜찮을 것 같고요...
sena (2010-07-05 00:09:52)  
요즘도 밥이 좀 잘 먹히나요? 보실 예정이라던 <로미오와 줄리엣> 후기도 안 올라고 하니 또 패닉 속에 계신건 아닌지 약간 걱정이 됩니다.;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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