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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blanc(2003-09-18 21:18:04, Hit : 4091, Vote : 983
 [디오티마]

집에 있는 만화를 정리한답시고 옮기다가 다시 삼매경에 빠진 한심한 blanc.
다시 읽어도 <디오티마>는 참 재미있는 작품이다.

권교정이야, 진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으니 이 작품의 미덕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헬무트>에서는 데뷔작답게(?) 독자를 의식한 썰렁한 유머가 눈에 띄었으나, <디오티마>는 보다 눈치 안보고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두 편 다 무지무지 뒤가 보고싶긴 하지만, 그런 면에서 난 <디오티마>가 쬐끔 더 끌린다.

인간의 앎의 문제,  죽음과 영혼 그리고 환생,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끌림, 자아동일성..수 많은 문제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진화하는 영혼’ 디오티마와 함께 흘러간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무엇보다 재미있게 하는 것은 현실적인 SF설정이다. 아니, 이 말은 어폐가 있다. 난 사실 이 이야기의 설정들이 얼마나 리얼한지 판단할 지식 같은걸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이야기 속의 미래세계와 우주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사람들의 감정과 일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함선 식당의 특별메뉴 라자니아가 먹고 싶은데 특근 때문에 못가는 부함장의 투덜거림이 있고(왜 배달을 안해주는거야, 하긴 배달원을 고용하려면 직원 일인당 적응 훈련비가 엄청나니까 무리인가 라는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 함선 근무자들은 노조에 가입해 있다. (뒤의 설정집에서 작가는 다소 꾸리한 공식 디자인을 소개하며 ‘디오티마의 첫 파업에서 작가 측에 유니폼 디자인의 개선을 요구하면 어떨지’라는 농담을 하고 있다)

일전에 강경옥이 <라비헴 폴리스>를 그리면서 오늘날과 다르지 않을 미래의 인간관계나 감정, 평범한 생활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었다. <라비헴 폴리스>는 일상생활이 주가 되는 드라마였지만, 이 작품은 한걸음 나아가 우주라는 비일상속의 ‘무중력’과 같은 상황까지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전에 영화속에서 본 무중력상태에서 수영하듯이 둥둥 떠다니는 우주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멋지고 여유로워보이던가.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보면 ‘무중력’이란 그다지 만만한 상태가 아니다.
적응훈련을 받으며 멀미를 일으켜 웩웩거리는 모습이 나오고, 우주에 나가기 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저중력 상황이라는건 그다지 쾌적하지 않다.
‘중력 적응 점수가 낮거든…한시간쯤 지나면 꼭…멀미가 나’
‘난 달 정도의 중력만 있어도 버틸 수 있는데’
‘여기엔 중력이 존재하니까….그것이 존재하는 모든걸 바닥으로 끌어당겨주지. 세포 하나하나마저 극히 자연스럽게’
지구에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존재하는 ‘중력’이라는게 얼마나 인간에게 고맙고 필요한 존재인지,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는 얼마나 자연스러운지가 설명이나 설교가 아니라 꼭 맞는 상황설정과 주인공들의 대화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기존의 SF 속 우주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광속으로 날아다니는데 비해, 여기서는 <초속 560킬로미터>란 말에 대부분의 캐릭터는 얼굴에 빗금을 그어가며 ‘그런 속도로 가속하다간 동체부터 짜부러들지’ 내지는 ‘가속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도 쇼크사 할거야’ 라고 중얼거린다.
이 작품은 ‘우주생활’이라는 신기한 비일상을 너무나 멀쩡한 얼굴로 일상적으로 그리는 신기한 드라마다. 이런 식으로 궁상맞을 정도로 리얼한 SF는 처음이다.
미래와 SF라는 상상 속의 이야기임에도 너무도 현실적인 설정과 생생하고 다양한 등장인물은 작가가 풀어내는 특유의 주제와 균형을 이루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미저리처럼 작가를 납치해다가 묶어서라도;; 뒷편을 토하게 하고 싶은 작품이건만, 이런 만화의 후속편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판매 시스템부터 독자인구까지 도대체 풀릴 수 없는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얽힌 현실이 갑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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