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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anc(2012-12-01 23:14:30, Hit : 1623, Vote : 371
 [the Ballet Called Swan Lake] ch.1

[the Ballet Called Swan Lake]
by Cyril W. Beaumont

first published in 1952


1장: [백조의 호수]의 기원과 컨셉트(라이징거 버전)

1877년 3월 4일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 대본은 베기체프와 겔체.
음악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지젤>과 <백조의 호수>는 로맨틱 발레의 두 대표작이다. 그러나 [지젤]의 고티에와는 달리 러시아 대본가는 영감의 원천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영감의 씨앗은 1866년 4월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이코프스키는 26살로 새로 조직된 모스크바 음악학교의 작곡 교사가 되어 황실극장의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라자리는 모스크바 황실극장 감독 베기체프를 소개했다. 그는 노래로 유명한 과부와 결혼을 했는데, 그녀의 아들 콘스탄틴과 블라디미르 쉴로브스키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문학에 흥미가 깊었다. 당시 14살이던 이 소년들은 차이코프스키의 애제자가 되어 여행에 자주 동행했다.

1868년, 차이코프스키는 첫 오페라 [보에보다]를 완성짓고, 라자리, V. 쉴로브스키, 베기체프와 유럽여행을 떠난다. 라인강을 따라 베를린과 피리에 갔고, 차이코프스키와 베기체프가 이 휴가동안 본 로맨틱한 성과 라인강변의 광경이 플롯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차이코프스키의 이름이 [백조]의 대본에 나오지 않지만, 그가 한 몫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1860년, 여동생 알렉산드라가 리오프 다비도프와 결혼해서 키에프의 카멘카에 갔다. 차이코프스키는 여동생을 따라가서 조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조카 이반 리보비치는 1871년 카멘카의 여름휴가 기록을 남기는데, 차이코프스키가 조카들을 기쁘게 해주려 [백조들의 호수]라는 소품 발레를 만들었다 한다. 이반은 후일 오데트 주제와 연관되는 매력적 멜로디를 기억한다 증언한다.
한편, 소련 발레사가 유리 바크루신은 이 증언을 보류하는데, 이는 오로지 다비도프의 말에만 의존할 뿐 다른 증인이 없고, 다비도프의 비망록은 그가 아주 나이들어 썼으므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베기체프는 1828년 5월 6일에 툴라에서 태어났다. 오래된 귀족가문에 모스크바 대학에서 교육받고, 의회에서 일했으며 모스크바 황실극장 감독이 되었다. 감독이 되어 베기체프는 개혁을 도입했는데, 콤퍼니뿐 아니라 무대 연출에도 정력적으로 임했다. 모든 아티스트가 주역과 조역을 동시에 준비하도록 했고, 많은 유용한 규정을 만들었다. 사진을 보면 잘생기고 세련된 지적 외모에, 넓은 이마와 곱슬머리에 잘 손질된 부드러운 콧수염과 턱을 따라 풍부한 수염과 면도된뺨 등 하나하나가 빈틈없고 유능한 관리로 보인다. 코미디와 보드빌 대본을 많이 썼고, 가끔 공연되었다. 무대에도 등장해 성공을 거두었다.

바실리 표트로비치 겔체는 1840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19세기 초반에 러시아에 이주해온 독일인이었고, 빵집을 열고 모스크바 상인의 딸과 결혼했다. 세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모두 극장 관련 일을 했다. 바실리는 모스크바극장, 표트르는 페테르부르크 극장의 댄서가 되었다. 아나톨은 무대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모스크바 프로덕션 [잠미녀]의 비전신 파노라마를 디자인했다. 베라는 말뤼 극장의 배우였다.

바실리는 1848년 모스크바 발레 학교 입학, 56년 졸업했고 볼쇼이에 연봉 120루블에 군무로 들어갔다. 곧 승진해 1860년에는 솔리스트가 되었는데, 특히 마임을 인정받았다. 6년 뒤, 생 레옹이 [곱사등 망아지]를 모스크바에 올릴 때 주인공 이반을 추며 발레리나 아델라 그란초바 파트너를 했다. 그의 이반 해석은 모스크바 발레의 새로운 전통을 만든 위대한 공연으로, 이후 350회 이상 췄으며, 나이들어서는 1906년 은퇴 때까지 칸 역을 맡았다.
겔체는 다독가에 교양인으로, 언어감각이 있어 베지체프는 [백조] 작업에 그를 넣은 것이다. 그는 주역 댄서이자 마임일 뿐 아니라 모스크바 발레의 관리직을 맡아 마임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예술성은 모스크바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된 딸 에카테리나 겔체로 이어졌다.

어쨋든 플롯은 백조 처녀의 신화를 연구하거나 세계문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테마에 적합하게 요소들을 재구성해 주요 이야기를 만들었다. 1877년에 인쇄된 오리지널 대본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모스크바 쿠드리노 지역에서 사적으로 인쇄되어 백조 상연전에 나돌던 텍스트는 베기체프와 겔체가 쓴 것이 아니라 순수 상업적 목적으로 발레 스토리를 쓰는 출판업자가 고용한 일꾼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백조] 대본이 쓰인 날짜를 확정짓는건 어렵지만, 차이코프스키는 1875년 6월 동안 작곡을 위해 초청받았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에게 쓴 편지가 9월 10일과 22일인데, 위촉을 언급한다. ‘오페라의 감독이 나에게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 음악을 쓰도록 위촉했다. 나는 돈도 돈이지만, 오랜 기간 이런 종류의 음악을 써보고 싶었으므로 받아들였다’

[백조]안무는 오스트리아 출신 라이징거가 맡았는데, 그는 관습적이지 않은 음악에 당혹해 차이코프스키의 스코어를 관습적인 디베르티스망 연속과 동화 스타일로 고치려했다. 또 차이코프스키에게 오데트를 위한 러시아 댄스를 작곡해 달라 하기도 했다. 라이징거의 편집으로 원 스코어는 여기저기 짤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다른 발레 음악 발췌로 대체되기도 했다.
무힌에 의하면 라이징거는 범용한 안무가였다. 댄서들은 자기 바리에이션을 만들고, 모든 춤은 짜집기였다. 발레는 이름 없는 댄서 펠라자 미하일로브나 카르파코바를 위해 만들어졌다. 리딩 발레리나 소브쉔스카야가 4번째 공연에까지 출연하지 않았는데 카르파코바가 주역을 맡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익명의 필자는 황실극장 연감에서 ‘카르파코바양이 발레리나 지위를 받았으나 그걸 정당화 하지 못했다. 예술성 면 심지어 춤의 템포도 너무 단조로워서 그녀가 춘 다른 작품과 어떠한 차이도 없었다’

카르파코바에 대해 현존하는 유일한 언급은 카를로 블라시스가 쓴 ‘무용수: 발레 스타와 민속춤’(1864, 모스크바)다. 블라시스는 60대 초반에 모스크바에 가서 테크닉 레슨을 했는데, 이는 훗날 훌륭한 전통을 이루게 된다. 또한, 오르파, 메테오레, 파우스트라는 주요 3작품을 만들었다. 게다가 당대 모스크바 댄서를 정리한 책을 썼는데, 이 중 카르파코바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이다.

‘카르파코바 양은 매력적이고 재능있는 학생이다. 상당한 발전이 있고, 훌륭한 댄서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녀의 몸, 라인, 능력에 맞는 춤에 대한 자세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다양한 스타일에 맞는 재능을 가졌다; 우아함, 열정, 격렬함, 앙 레르와 아 테르 양쪽이 다 훌륭하다. 특히 [피그말리온]의 아폴로와 테르프시코레의 파드두는 놀라운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다…카르파코바양의 매력적 외모와 날씬한 허리는 조화롭고 효과적 인상을 주며, 얼굴 표현도 매우 귀엽다’

유명한 당대 평론가 샬콥스키는 두 댄서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카르파코바는 아름답지만 그 춤은 무겁고 마임은 표현적이지 못하다. 어떤 영향력이 없었다면 그녀는 코리페 이상 승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브쉔스카야는 차갑고 무겁게 췄지만 그녀는 진정한 댄서다. 과도한 정열로 오버액팅을 했지만.’

다른 평론가 S.M.은  [모스크바 정보]에서 소브쉔스카야가 관중을 정복했다고 선언한다. ‘어려운 도약과 빠른 회전이 아니라 역할 구축과 마임에 반영된 춤에서’ 의심할바 없이 카르파코바를 소브쉔스카야 대신 초연에 세운 것은 어떠한 영향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라이징거 프로덕션 초연에 대한 상세한 목격담은 없지만, 러시아 잡지 ‘세계의 일러스트레이션’에 흥미로운 목판화가 두장 실려 있다. 발레의 2,4막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오데트 역의 소브쉔스카야 사진이 실려있다.

레쉬코프는 볼쇼이 극장의 100년에 대한 연구서에서 원전을 밝히지 않고 다음과 같이 적는다
‘라이징거의 상상력은 빈곤하고 댄서들의 대부분은 유약하고 흥미가 없었다. 유영하는 백조는 군무 열로 표현되었는데, 무대를 가로지르는 천이 표상하는 물 위로 백조인척 하는 댄서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어쨌든 발레는 평범하고, 무대와 의상은 특출날거 없고, 지휘자 리아보프는 경험이 풍부했으나 밍쿠스나 푸니만 아는 사람이었다.
초연이 실패하고 3년 가까이 흐른 뒤 [백조]는 1880년 7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재연되었다. 이번엔 올라프 한센 안무인데, 나중에 파리 오페라의 메트르 드 발레와 댄스 교수가 되는 사람이다. 이 새 버전에서 오데트는 그의 촉망받는 학생 칼미코바가 췄다. 이 프로덕션에서 춤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 1막 왈츠, 씬, 파드두, 꽃무리춤/ 2막 오데트 등장, 백조들 등장, 춤, 아다지오, 파드두/ 3막 헝가리춤, 나폴리탄, 러시아춤, 스페인춤, 마주르카/ 4막 백조들, 오데트의 등장, 작별
1882년 10월 28일, 발레는 다시 한센에 의해 만들어졌고, 주된 변화는 ‘러시아춤’이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새 넘버로 바뀐 것이다. 이는 발레리나가 아닌 리디아 게텐이라는 촉망받는 학생이 췄다.

이 후 [잠미녀](1890), [호두](1892)의 성공으로 페테르부르크의 황실 극장의 감독은 [백조]를 재연하자고 생각하게 된다. 브세볼로지스키는 프티파와 상의하며 모스크바 프로덕션의 실패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프티파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안무와 다른 점이 실패의 원인일 것이라 했다.
모스크바에 발레 스코어를 찾아 보냈고, 프티파는 테마를 연구하며 가능성을 확신했다. 우선 2막호숫가만 만들어보기로 하고, 댄스 시퀀스를 대략 정해서 신뢰하는 조수 이바노프에게 맡겼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첫 발레가 살아난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으나 리허설이 시작하자마자 1893년 12월 6일에 사망한다. 작곡가의 어마어마한 인기를 의식해 당국은 차이코프스키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로 마린스키 극장에서 추도 공연을 하기로 하고 1894년 2월 17일이 낙점되었다.
이미 진행된 이바노프의 2막을 포함해 프티파는 서둘러 완성시켰다. 이바노프가 레냐니를 위해 만든 오데트는 성공이었고, 페테르부르크 신문은 다음과 같이 썼다 : 프로덕션은 위대한 이바노프 덕이다. 아다지오는 완전한 안무시였다’
역사가 플레챠예프는 발레리나에 대해 썼다 : 레냐니가 맡은 주역은 진정 백조의 여왕이었다. 얼마나 영속적이고 유연하며 벨벳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인지! 이 민감함과 무대 수행이라니! 발레리나의 성공은 어마어마했다.

마지막으로, [백조]의 리바이벌을 이끈 다른 버전 이야기를 하겠다. 차이코프스키를 기리기 위해 작품을 상연하기로 했을 때, 황실극장 감독은 [잠미녀]와 [호두]가 레파토리에 있으므로 망설였다. 브세볼로지스키는 이어 [백조]를 생각해냈으나 프티파는 모스크바 실패 때문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브세볼로지스키는 그럼에도 재연을 주장했다. 음악을 들은 후에 호숫가 장면만을 시도했다고 하지만 프티파는 자신의 명성이 떨어질까 싶어 이바노프에게 맡겼다. 이바노프의 성공으로 감독은 전체를 올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바노프의 성공은 행운이 아니었고, 차이코프스키의 강력한 민족성이 러시아에서만 완전히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발레 전체가 상연되었을 때 확인되었다. 프티파는 이바노프의 2막을 포함시키기로 하고 전체 안무에 착수한다. 그러나 1막을 만들고 3, 4막은 러프만 정한 채 쓰러져버렸다. 이 환경에서 그는 이바노프에게 발레 완성을 맡겼다. 따라서 1막은 4막 중 가장 약한 부분이 되는데, 이는 프랑스적이며 러시아적 감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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