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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anc(2013-01-04 23:17:03, Hit : 1663, Vote : 287
 [the Ballet Called Swan Lake] ch.7

Ch. 7 레프 이바노프

레프 이바노프는 1834년에 태어났다.  생물학적 어머니는 티아 아다모바라고 한다. 겨우 11개월 때 어머니는 고아원에 그를 맡겼고 1837년11월 25일, 친권을 포기했다. 그 뒤 상인 집안에서 8세까지 자랐고, 2년간 기숙학교에 있다가 페테르부르크의 황실발레 학교에 입학했다.

피메노프의 클래스에 들어갔다가 그레들루와 프레데릭에게 배웠고, 장 프티파 클래스로 진학했다. 학생 시절 무라비에바와 ‘라 페리’를, 파니 엘슬러와 카타리나, 에스메랄다, 요정의 대녀를 췄다. 일찍부터 음악에 대한 놀라운 재능을 드러냈으나, 선생들은 그것을 별로 반기지 않았다. 그는 멜로디를 한번 들으면 바로 외워서 연주할 수 있었고, 그 재능은 음악 모임 감독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이바노프를 음악 천재라 생각했으나, 발레 스쿨의 품에서 빼낼 수는 없었다.

1852년, 이바노프는 과정을 마치고 연봉 350루블에 댄서로 임명되었다. 당시 메트로 드 발레 쥘 페로는 러시아 댄서에 주목하지 않았고, 그를 2년간 코르 드 발레에 두었다. 변화는 발레리나 스미르노바가 이바노프에게 자선공연의 ‘고집장이 딸’ 파트너를 제안하며 시작되었다. 그는 받아들였고, 성공적 데뷔를 해서 페로는 그에게 단역들을 주기 시작했다. 1858년, 봉급은 600루블로 올랐고, 발레 스쿨 교사로 지명되여 300루블의 추가수입이 생겼다. 1859년에는 베라 리아도바와 결혼했다.

    프티파가 페로의 메트르 드 발레를 물려받자, 이바노프는 수석 댄서와 마임에 이름을 올렸다.
파우스트, 에스메랄다, 카타리나(페로), 피아메타(생레옹), 파라오의 딸, 라 바야데르(프티파)를 췄다. 유명 발레리나들과 주요 역을 췄고, 클래식 뿐 아니라 캐릭터 댄스,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 춤에 뛰어났다.

1860년, 댄서로 834루블, 교사로 300루블, 공연당 5루블을 받는 계약을 맺었다. 2년뒤엔 공연수당이 두배가 되었다. 1875년, 바르바라 이바노바(예명 말추지나)와 재혼했다. 1882년 수석 레지슈 보다노프가 사임하자 이바노프는 5000루블과 교육 활동 1000루블에 그 자리에 임명되었다. 1년 뒤 공적을 인정받아 금메달과 스타니슬라우스 리본을 수여받았다.
    
1885년, 차석 메트로 드 발레로 임명되었다. 프티파는 당시 63세로 나이들어 조수가 필요했는데, 외국에서 라이벌을 데려오느니, 친숙한 동료를 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티파는 이 새 조수에게 언제나 그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인상을 확실히 줬다. 이바노프가 새 춤이나 발레를 만들 때, 프티파의 승인이 필요했고, 프티파는 작품을 편집하거나 바꿀 권한이 있었다. 때때로 그의 작품에 대한 모욕적 처사에 분개하면서도 이바노프는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했다.

이바노프의 첫 프로덕션은 ‘고집장이 딸’ 리바이벌이었는데, 여기에는 18세기 안무가 듀베르발의 전통과 페로의 표현적 댄스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이바노프는 그 외에도 많은 발레를 프티파와 협조해 만들었는데, 보리소글레보프스키에 따르면, 이는 프티파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프티파의 지배하에 이바노프를 두려고 한 억지 협업이었다. 프티파의 이름은 언제나 포스터와 프로그램에 공동 프로듀서로 실렸다. 이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수년간 [백조] 안무가 오로지 프티파 공으로 여겨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호두] 안무에 이바노프 이름만이 실렸던 것은 그저 프티파가 병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마린스키에서 뛰어난 기술 지도를 했고, 학생중에는 소콜로바, 바젬, 프레오브라젠스카야 등이 있다.  성격에 대해 말하자면, 온화하고 자기 성과에 대해 겸손했으며 주장을 내세우는 법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에게 닥치는 일들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기 보다는 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호두](1892)의 테마는 황실 극장 감독 브세볼로지스키가 택했다. 차이코프스키가 프티파에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필요한 춤과 길이가 완전히 명기되어 있어 그는 실망해서 극도로 주저하며 일감을 받아들었고, 성공에 대한 자신도 없었다. 주제를 연구해도 아무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1막은 심포닉 라인으로 흘러가며, 몇몇 캐릭터의 특징은 표현적 음악이 묘사한다. 반면 드로셀마이어와 생쥐 전투는 표현주의적이다. 2막은 민족색 강한 캐릭터의 디베르티스망으로 음악에 표현이 되어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중국 춤, 어릿광대춤, 눈송이춤과 파드두다. 중국춤은 까딱이는 고개, 옆으로 움직이는 팔, 하늘을 향한 손가락으로 묘사되는데, 당대 도자기, 태피스트리에 묘사된 대중적 이미지다. 어릿광대의 춤은 솔리스트와 군무가 거의 애크로배틱한 러시아 민속춤을 추는 컨셉이다.

눈송이 앙상블은 흰 롱드레스를 입은 댄서들이 눈꽃이 떠다니다가 지상에 부드럽게 내려않는 모습을 성공적으로 묘사했다. 당대 증언에 따르면 안무의 패턴과 모양이 시적이고 참신했다 한다. 또한 음악의 멜로디 라인을 덧그릴뿐 아니라 표현적이기까지 한 파드두 아다지오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보라. 앙상블과 파드두에서 관객은 서정적이고 애수어린 접근방식이, [백조] 2,4장이 보인 시적 구성의 정점에 도달한 것을 목도할 것이다.

나는 이바노프가 솔직한 태도로 속깊은 생각을 털어놓은 그의 일기를 읽을 기회는 얻지 못했다. 내 지식은 유리 솔로님스키 등 다양한 소비에트 발레 문헌의 인용에 한정된다. 그러나 이바노프가 온갖 역경에도, 몽상가이자 이상주의자로서 주어진 모든 종류의 일을 완수하는 만능 발레 장인으로 춤을 보다 표현적으로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는 때때로 생도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비록 타고난 수줍음으로 대중 앞에선 과묵했으나 일기에서는 솔직해진다. ‘나는 언제나 네가 자신의 예술에 무관심한 것이 놀랍구나. 너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한조각의 흥미도 보이질 않아. 넌 예술가가 아니라 아니라 자동기계다. 리허설에서 언제나 게으르고 노력에 인색하고, 연습에 마음을 쏟질 않아. 공연에서도 똑같아. 이번 시즌 내내 우리 작업은 고통스러웠다’

댄서들의 늘어진 태도와 예술로서의 춤에 대한 무관심은 인내의 한도를 넘어섰고, 1892-1895년 사이의 [호두]와 [백조]에는 분노와 환멸이 반영되어 있다. 시라예프는 회고록에서 이바노프에 대해 ‘갑작스레 창의적이고 충격적으로 독특한 동작을 만들어내서, 우리는 그 새롭고 본적도 없는 것들을 대체 어디서 끌어온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백조]의 테마는 정확하게 이바노프의 취향과 재능에 들어맞았고,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로 한다. 프티파 작품의 유쾌함과 반짝이는 캐릭터는 멜랑콜리한 서정성으로 대체되었고, 다가오는 파국의 어두운 패시지에 때때로 녹아들었다. 이바노프의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은 차이코프스키의 시적이고 표현적 스코어와 반응을 일으켰고, 그는 자신의 안무가 음악에 뿌리를 두고 꽃피우기를 바라며 단순한 리듬과 패턴의 표현이 되지 않게 주의했다.

이러한 새로운 콘셉트에서 안무는 그저 음악의 리듬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분위기와 감정의 정수에 닫는 시각적 표현에 이르렀고, 이는 러시아 발레의 발전에 끼친 가장 중요한 공적이다. 이러한 음악과 춤의 혼합으로서의 발레 콘셉트는 쥘 페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바노프는 이를 바리에이션과 앙상블 양쪽에서 확대 발전시켰고, 후에 포킨의 안무적 이상에 영감을 주었다.

프티파의 안무 구성 태도를 이바노프와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프티파는 정확성을 추구하는 정신을 지녔고, 시나리오 구축, 음악 배열, 코스튬과 장치 선정은 그에게 새 발레를 만드는 주된 단계였다. 이바노프는 계획대로 가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의 작업은 보통 리허설룸에서 시작되어 그는 음악을 듣고, 그 분위기와 메시지를 안무로 변화시켰다. 프티파는 시시한 음악에 훌륭한 춤을 안무했으나 이바노프는 음악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페로와의 초기 협업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지, 그가 타고난건지 알 수 없으나 이바노프는 로맨틱 발레의 전통 선상에서 작업했다. [백조]는 [라 실피드]나 [지젤]을 닮았다. 돌아온 사랑과 좌절된 사랑, 비현실적 존재에 대한 남성의 유한한 사랑에서 오는 감정적 갈등으로 귀결되는 로맨틱한 콘셉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조]는 이바노프 의 정점이자 끝이다. 공연 후, 그는 이전의 한발 물러선 태도로 돌아갔고, 일상적인 비루함을 받아들였으며, 마음 속의 안무적 야심은 잦아들었다. 그는 술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만들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이 바라던대로 작업중에 죽었는데, 극심한 피로 속에서 [실비아]의 새 프로덕션을 만들던 도중이었다. 그는 병들어 1901년 12월에 사망했고, 그의 새 발레는 다른 개인적 꿈들과 마찬가지로 미완으로 남았다.

비록 이바노프는 수없는 시적 아름다움을 단 몇시간안에 압축해냈고, 스러져갔지만, 그의 이상은 포킨이라는 젊고 재능있는 안무가에게 영감을 주어, 서정 발레의 콘셉트를 발전시켰다. 죽기 전에 이바노프는 일기를 썼고, 몇줄이 떠오르는 세대인 그의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그의 훈계는 예술가로서 산 자신의 고귀한 비명이자 훌륭한 복음이다.
‘부디 네 직업을 그저 생계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영혼을 바칠 수 있는 예술로 여길 수 있는 정신과 굳건함에 축복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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