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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Dance, Dance


  sena(2013-01-05 00:42:35, Hit : 1872, Vote : 382
 [the Ballet called Swan Lake] ch.10

알렉산드르 고르스키 (Alexandre Gorski)

알렉산드르 알렉세예비치 고르스키는 1871년 8월 6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상점의 회계 담당으로 생계를 꾸렸지만 일생의 관심사는 회화, 자수, 양잠이었다. 아들이 8세가 되자 부모는 그의 아들을 상업 학교에 보내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고르스키의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1879년 여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게 된다. 딸은 가족의 지인으로 황실 발레 학교의 감시관으로 있는 O.B 아담스를 통해서 이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함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상업 학교에 등록한 다음 발레 학교에 가서 딸의 입학을 성사시켰다. 이들이 발레 학교를 떠나려고 할 때 아담스가 물었다. “아들은 어쩌고요?” 고르스키의 어머니는 샤샤는 이미 상업 학교에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감시관은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외치고는 아들을 감독에게 선보였다. 그녀는 아들 역시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는 행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현명치 않다고 생각하여, 운명이 향하는 대로 놔두기로 했다.

1880년에 고르스키는 수업료를 지불하는 학생의 신분으로 황실 발레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카르사비나의 아버지인 플라톤 K. 카르사빈이 주관하는 주니어 클래스에 배치되었다. 그 해에 소년의 열성과 근면함이 괄목할 만 했는지 다음해에는 수업료를 면제 받는 학생군에 속하게 되어 무용과 보편적인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받게 되었다. 고르스키는 카르사빈에서 엄격하나 교양이 풍부한 N. I. 볼코프를 거쳐 당시 명성의 절정에 있었던 마리우스 프티파가 가르치는 시니어 클래스에 들어가게 된다.

1899년 5월 31일에 학교를 졸업하고 군무진에 합류한다. 곧 코리페, 코르피로 승급하고 6년 동안 솔로 댄서의 지위에 있었다. 수많은 자잘한 역을 거친 후에 <고집쟁이 딸>의 남성 주역을 맡고 그 다음에는 <마술피리>의 주역을 담당하게 된다. 그는 <플로라의 각성>의 아퀼론과 같은 고전적인 발레의 역할을 맡은 동시에 오페라 <탄호이저>의 사티로스, <호두까기 인형>의 중국 인형 같은 캐릭터 댄스 역도 담당하여 매우 다재다능했음을 알 수 있다. 무용 외의 교육에서 저녁 수업에도 참석하여 읽기와 외국어 습득에도 힘썼다.

고르스키는 1895년 실용적인 댄스 노테이션을 만들고자 애쓰던 무용수 V. I. 스테파노프와 친구가 되었다. 그 다음해에 P. A. 게르트의 클래스에 무용 교사로 위촉되었고, 후에 그의 조교가 되었다. 스테파노프가 1897년에 사망하자 고르스키는 친구의 작업을 자신이 계속 진행하는 것이 도리라고 느끼고 그의 추천으로 스페파노프 댄스 노테이션 시스템은 학교 수업에서 연구 주제로 부각되었으며 그 자신이 댄스 노테이션을 가르치기도 했다.

1898년이 끝나가던 무렵 모스크바 극장의 실권자들은 모스크바에는 아직 선보이지 않은 프티파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올리기를 원하게 된다. 의심할 여지 없이 프티파의 추천에 의해서 고르스키에게 이 임무가 맡겨졌으며 고르스키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시기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이 설립된 시기와 맞물린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고르스키는 1899년 4월 11일에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일막의 발레 <클로린다: 숲 요정의 여왕>을 올린다. 에른스트 켈러가 음악을 담당한 이 작품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황실 발레 학교의 시험(examination) 공연이었다. 같은 해에 고르스키는 다시 모스크바로 가서 모스크바 안무가인 I. I. 클루스틴과 협력하여 글라주노프가 음악을 담당한 프티파의 <라이몬다>를 올린다.

1900년 9월 1일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에서 프리미어 당서로 지명되었으나 같은 달 9일에 모스크바 극장 내 발레 컴퍼니에 감독직(regisseur)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 자신은 이 감독직을 순전히 임시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 시점부터 생애 마지막까지 모스크바에 상주하였다. 고르스키는 모스크바가 예술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 도시에 도착하였다. 예술 애호가 마몬토프가 젊은 샬라핀을 데리고 오페라 극단을 창설하고 모스크바 예술 극장은 세계적 명성을 누리게 되는 프로덕션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으며 코로빈, 레비탄, 브루벨의 회화를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고르키와 체홉의 작품이 읽히고 논의되는 가운데 문학 서클이 팽창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오로지 발레만이 이러한 활발한 예술 활동에서 제외된 것처럼 보였다.

역사가 유리 바크루신이 지적하는 것처럼 왜 그런지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모스크바 발레 컴퍼니에는 재능 있는 안무가가 없었고 무용수가 두각을 나타내기만 하면 곧장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보내졌다. 레퍼토리 역시 빈약해서 극장은 발레 공연이 있는 날이면 종종 1/3 정도만 차 있곤 했다. 그러나 발레 학교만은 젊고 재능 있는 무용수들을 배출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고무시키고 이끌어 줄 지도자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고르스키의 다음 행보는 프티파의 <돈 키호테> 리바이벌로, 기존에 있는 프로덕션대로 올리지 않고 예술 개념의 일치를 주장한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 호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화가 고로빈과 콜로빈에게 의상과 세트를 맡긴 새 프로덕션은 1900년 12월 6일에 막을 올렸다. 카르사비나는 멋진 자서전 <극장가>에서 이렇게 전한다. “발레계는 비현실적인 배경, 일반적으로 용인되던 의상의 정전을 탈피한 프로덕션에 경악했다.” 군무는 더 이상 소극적이거나 순전히 장식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고 작품의 중추를 담당한 동시에 보통 군무를 표현하는 대칭에서 벗어나 비대칭으로 나타났다.

고르스키가 거둔 결정적 성공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전해졌고 발레 고어들을 달아오르게 하여 프로덕션의 경이를 직접 체험하러 모스크바로 이끌었다. 이들 중 하나인 알렉산드르 브누와는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프로덕션의 감상을 남겼다. “오래된 발레 <돈 키호테>의 모스크바 프로덕션이 걸작이라는 소문과 이를 만들어 낸 발레 마스터 고르스키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고르스키의 새 버전은 아마추어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끔찍한 구성의 결여로 손상되어 있었다. 그의 “참신함”에는 무대 위 군중이 목적 없이 발작하듯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움직임에 있어서 드라마의 가능성, 무용수들이 모두 평범한 색조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우울했다. <돈 키호테>는 황실 극장에서 경애를 받았던 적은 없지만 이제 이 작품은 가치가 없는 어떤 것이 되어 악명에 가까워졌다.”

1901년 프티파-이바노프의 안무를 많이 사용하여 <백조의 호수>를 리바이벌했다. 하지만 1막과 3막의 재개정은 2막과 4막의 서정성과 더 큰 대조를 이루게 되었다. 같은 해에 그는 7편의 발레를 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자신이 개정한 <작은 곱사등이 망아지>도 있었다. 이 작품은 마임 무용(mimetic dance)의 관점에서 특히 그의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1902년에 모스크바 극장에서 발레단 감독(matre de ballet)으로 임명되었으며 그의 <돈 키호테>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 올라갔다. 이 해 여름에 화가 코로빈을 대동하고 파리로 가서 중세 건물을 보고 영감을 얻어 <구들레의 딸>이라는 작품을 올렸는데, 이 작품은 페로의 <에스메랄다>가 그렇듯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02년 11월 24일에 막이 올랐으나 작품의 뚜렷한 사실주의 경향 때문에 평가는 엇갈렸다. 주역 에스메랄다로 소피아 페도로바라는 젊은 무용수를 기용하였고 무용수의 드라마틱한 해석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발레의 반응이 신통치 않음에 실망한 고르스키는 일년 이상을 신작을 내놓지 않고 지내다가 푸시킨의 동화에 원안을 둔 <황금물고기>를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04년의 끝자락에는 모스크바 발레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교습을 했다. 마임과 플라스티크를 시니어 학생에게, 아카데미 테크닉을 주니어 학생에게 가르쳤다. 바크루신에 의하면 고르스키는 전통적인 바이올린에서 피아노로 클래스에 대동하는 악기가 바뀐데 책임이 있다고 한다. 그의 교습은 개개인의 창의적인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1905년에는 프티파의 유명작 <파라오의 딸>을 리바이벌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그려진 배경보다는 이집트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페도로바는 노예 키타역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파라오역은 시도로프, 누비아의 왕 역은 모로드킨이 맡았다. 셋 모두 고르스키의 제자였다. 이 리바이벌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파블로바가 아스파시아를 추기 위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와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스타 무용수가 모스크바 무대에 선례를 만들게 되었고 곧 이런 일이 흔해졌다.

1906년에는 <백조의 호수>와 <돈 키호테> 새 버전을 만들었다. 그 다음해에는 <에튀드>라고 부른 디베르스티망을 만들었는데, 정서를 잘 살린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1908년 말에 올린 <라이몬다>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 성공은 1909년 1월 10일에 올린 플로베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살람보>로 이어졌다.

1911년에 <지젤>을 리바이벌하게 되는데, 중세에서 19세기로 일막의 시대를 옮겨서 일막의 현실성과 2막의 환상성의 대조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이 해에 런던으로 가서 대관식 축제에 맞춰 알함브라 극장에서 <무용의 꿈>을 제작했다. 1912년 1월 모스크바에서 페로의 <해적>을 리바이벌하였고 후에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작은 곱사등이 망아지> 새 버전을 선보였다. 1915년에는 센케비치의 소설 <쿼바디스>에 자극을 받아 <유니스와 페트로니우스>를 제작해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 해에는 글라주노프의 <5번 교향곡>을 사용해 발레를 만들고, 프티파의 <라 바야데르>를 리바이벌했다.

1918년에 러시아 혁명이 발발해 고르스키의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일년 후에 자신의 작품인 <스텐카 라진>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1920년에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네미로비치-단첸코와 협력하여 <백조의 호수> 새 버전을 올렸다. 1921년에는 이바노프의 안무를 부분적으로 차용한 <호두까기 인형>을 리바이벌하였는데 새로 만든 춤이 특별히 뛰어났다.

안무 활동과는 별개로 발레와 관련된 운영회 몇 군데에서 활동하였으며 발레 훈련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1922년에 <백조의 호수>를 다시 리바이벌하였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쓴 <레 프티 리앙>으로 발레 작품을 만들었다. 1923년 모스크바 뉴 씨어터에서 아이들을 위한 발레인 <불멸의 꽃>을 제작하고 1923-4 시즌에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음악을 가져온 <비너스부르크>를 만들었다. 고르스키는 지치지 않는 정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1924년 볼쇼이 극장에서 리허설 도중 신경쇠약을 일으켰다.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9월 20일에 사망하게 된다.

모스크바 발레 컴퍼니는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였다. 교사와 안무가로서의 자질 뿐 아니라 고르스키는 잘 교육받은 사람으로 그림, 글쓰기, 연기, 악기에 능하였다. 관심을 가진 모든 예술 분야에 적극적이었고 거기에서 스타일의 감각과 정서의 환기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본 사람만이 안무가로서 고르스키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의 독창적인 창작물은 그 수가 적고 리바이벌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창작에서 진취성의 개발이 필요함을 늘 역설하였으며 새로운 안무가의 등장이 발레 세계에는 필수적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발레 예술은 사그러 들고 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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