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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Dance, Dance


  blanc(2013-05-20 00:00:17, Hit : 1433, Vote : 300
 [Martha Graham - the Flame]2

모든이가 한가지에는 동의한다: 프로타스는 그레이엄이 작업으로 돌아오게 했다. 1969년, 은퇴했고 커리어가 끝났다고 느꼈다. 3년 뒤 프로타스의 품에서 방향을 전환해, 20년간 28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게 명성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뒤에 온 것은 안티클라이막스였다. 그레이엄은 열심히 작업했다. 하루에 4시간씩 스튜디오에 있었고, 때때로 말이 방향을 잃으면, 부감독 호지는 그녀가 말하려는 바를 해석해야했다. 때때로 자신이 리허설 하고자 하는 작품을 제대로 기억 못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녀 이름을 걸고 시즌은 이어졌고, 이전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리스테이지 했다.(이는 프로타스가 권했다고 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게 빚을 졌다) 바리시니코프, 누레에프, 폰틴, 플리세츠카야 같은 이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레이엄은 새 작품들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을까? 아마 그랬겠지만, 이제 오랜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때다. 그녀는 모피코트를 입고 마돈나나 교황과 사진을 찍었다. 작품은 잊자-옛날 옛적에 할만큼 했다. 많은 평론가가 작품이 약하다고 했지만 타임지 무용 평론가 키셀고프는 충성스럽게 칭찬하며 그녀의 명성을 서포트했다. 96세 생일에 키셀고프는 그녀와 인터뷰하는 영광을 누렸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그레이엄 여사는 ‘작은 새’를 여기에 간직해야한다고 댄서들에게 말한다고 했다. 작은 생명체…그건 마음이다’ 다른 리뷰도 그레이엄의 후기작에서 그녀의 신탁같은 말을 인용한다. 이는 나이든 여자 예술가가 얼마나 영적 존재인지를 찬양하는 것이다.

1991년 그레이엄은 죽었고, 프로타스는 유골을 뉴멕시코에 뿌렸다. 프로타스는 그레이엄이 말년에 작성한 몇가지 유언장에 자신이 상속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그레이엄의 조수들은 그녀가 누가 작품권을 상속할지에 대해 계속 흔들렸었다고 한다. 그레이엄이 죽을 때, 그녀는 3명의 신뢰하는 나이든 댄서를 불렀다. 그레이, 호지, 유리코. 세명은 여전히 컴퍼니와 작업하고 있었다. 그레이는 그레이엄이 모든걸 론에게 남긴다고 했다고 하고, 호지에 따르면 그레이엄이 그들에게 ‘내가 실수했다’고 했다고 한다. ‘론을 도와 줘’라고 해서 우리는 그러겠다고 했고 우리는 할 수 있는 바를 다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호지는 1년 후 그만뒀고(프로타스는 그녀가 그만뒀다고 했고, 그녀는 해고당했다고 말한다), 유리코는 2년뒤 철학적 차이를 언급하며 떠났다. 그레이는 97년까지 있었다.

프로타스 아래서 부예술감독이 리허설을 했지만 이들은 마지막 결정권이 없었다. 프로타스는 가끔 들여다보고 수정을 지시했다. 문제는 컴퍼니를 너머서 퍼졌다. 조프리 발레가 코플란드 100주년 기념을 기획할 때, 프로타스는 ‘애팔래치아의 봄’을 넣는 조건으로 아그네스 드 밀의 ‘로데오’를 제외할 것을 내걸었다. 조프리는 이를 따랐지만, 다른 조직들은 그레이엄 컴퍼니를 그들의 리스트에서 지웠다. 투어는 줄었고, 컴퍼니는 돈이 많이 드는 뉴욕 시즌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95-99년 사이 그레이엄 컴퍼니는 홈 시티에서 공연을 못했다.

적자는 늘었다. 그레이엄은 비지니스 우먼이 아니었다. 은행가 로스차일드같은 친구들이 이끌어줘야 했다. 1952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왈래스가 63번가 2애비뉴에 있는 정원이 딸린 오래된 벽돌 건물을 그레이엄 컴퍼니 본부에 기증했다. 미국 담배사 상속자인 듀크도 몇번이나 도와줬다. 점차 이런 친구들도 떨어져나가고, 80년대에 컴퍼니 기부는 줄어들었다. 투자자들은 다음 세대 그레이엄을 지원하고 싶어했다. 1990년에 빚은 140만달러가 되었고, 댄스 컴퍼니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레이엄이 죽자 자금 모으기는 더 힘들어졌다. 1994년에 컴퍼니는 u.s.신탁에서 100만달러를 빌렸고, 프로타스에 따르면 듀크가 변제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듀크는 죽었다. 컴퍼니는 돈을 갚을 길이 없어졌고, 프로타스는 개인 돈을 끌어들였다. 그는 그레이엄 센터에 30만을 제공했으며 여전히 10만불이 남아있다고 한다. 몇몇 사람은 주요 투자자들은 프로타스가 컴퍼니를 살리는데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업적 감각도, 예술적 능력도 없다’

1997년에 프로타스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것 같다. 그는 70년대 그레이엄의 스타로 LA에서 작은 단체를 감독하던 자넷 에일버를 만났다. 그는 새 예술감독을 찾아 유리코에게 제안했으나 원치 않는다고 했고, 다른 베테랑 댄서 아사카와에게 가서 거절당했다. 에일버는 1년 반 뒤에 일을 맡기로 했다. 다음은 빚청산이었다. 오랜 생각 끝에 컴퍼니는 기본 자산인 빌딩을 팔기로 했다. 부동산 개발업자로, 딸이 그레이엄 스쿨 학생이기도 했던 카욜라가 학교를 300만에 사고, 컴퍼니에게 그가 새로 짓는 빌딩에 공간을 주기로 했다. 댄서들은 이 이야기를 할 때 여전히 목메어 한다. 그렇지만 그레이엄 센터는 빚을 갚고 100만달러가 남았으며 스쿨과 컴퍼니는 임시 스튜디오로 이사갔다.

델린저와 프로타스는 1년간 그레이엄 센터에게 그레이엄의 작품을 상연권을 주고, 다른 누군가의 지도로 학교를 운영하게 했다. 프로타스는 그레이엄 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여기는 1998년 이후 그레이엄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또 단체의 컨설턴트로 상당한 급료와 캐스팅권을 포함하는 권력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만일 작품이 상연되는 방식이 마음에 안들면, 그는 상연 허가를 취소할 수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디렉터의 가장 큰 권한을 가진 것이다.
인수인계를 하는 동안 에일버는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한달에 일주일씩 통근했다. 2000년 여름에는 그녀가 인수를 할 예정이었으나, 프로타스는 제어권을 잃다는 사실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예술 후원자와 저명인사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위기에 책임을 느꼈다. 그들은 수표를 써줬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9년 9월, 상연권에 사인하고 2달 뒤, 프로타스는 위원회가 5명의 새 멤버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평화를 위해 위원회는 찬성했지만 많은 이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회의에서 무례한 취급을 받았다고 느낀 프로타스는 에일버에게 전화했다. ‘내가 지지 편지를 보내주지 않으면 그레이엄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마사 그레이엄을 위해서는 불구덩이에도 들어갈 수 있지만, 나는 협박 받는거는 싫어요’ 그녀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지난 3월 회의에서 프로타스는 더이상 에일버는 필요 없으며, 대신할 인물을 찾기 위해 1년간 머물렀다. 다음 회의에서 위원회는 그를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투표를 했다. 5월에 프레스톤(델린저의 후임)이 위원회에 재정상황을 보고했다: 봄투어를 끝내고 컴퍼니는 50만불의 빚이 있으며, 갚을 자산이 없다고. 위원회는 무용계를 발칵 뒤집는 행동을 취했다: 그레이엄 센터의 활동 중단을 투표에 붙이고, 모든 계획을 취소한 것이다. 다음날, 프로타스는 상연권을 철회한다는 편지를 위원회에 팩스로 보냈다. 6월달의 다음 회의에서 위원회는 그를 내보내는 투표를 했다.

이 시기에 10명의 위원이 사퇴했는데, 몇몇은 프로타스에게 동조했고, 나머지는 사태 자체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그들 중 하나인 라오스의 공주 소반나-포마는 나에게 프로타스를 향한 적대감에 대해 불평을 늘어놨다. 다른 이는 위원회에 있는 프로타스의 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론 편에 있는 사람은 다 무시했어요’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프로타스 편에 선 사람들은 최근에 그가 지명했거나 회의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 유명인사들(그레고리 펙, 베티 포드 등)이었다. 오래된 위원들이 남았고, 그들은 론 프로타스의 친구는 아니었다.

어쨌든 컴퍼니는 문을 닫았고, 누구도 그레이엄의 작품을 공연할 수 없게 되었다. 메릴랜드의 프로스트버그 대학은 오랜동안 2000년 여름에 학생들이 그레이엄을 다루는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일을 하는 몇몇 교사가 컴퍼니 댄서들과 함께 50여명의 동창 이름으로 프로타스의 행동에 반대하는 서명을 한 것을 알게 되자, 그는 감독인 베리 피셔에게 그들을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피셔는 거부했고, 프로타스는 프로스트버그가 그레이엄 작품을 공연하고 그레이엄 테크닉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르치거나 공적으로 그레이엄 이름을 사용할 권리를 철회했다. 피셔는 서둘러 다른 프로그램을 짰다. 그레이엄의 전 댄서로 미시간 대학 무용학과에서 가르치는 피터 스파링은 그의 단체는 더이상 그레이엄을 공연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는 그레이엄 테크닉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그레이엄은 세계의 댄스 레파토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프로타스는 다른 컴퍼니에 공연권을 내주면 그레이엄 작품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는 라이센스비가 그레이엄 센터가 아닌 프로타스에게 가므로 그에게 좋은 일이다). 그러나 프로타스가 허가를 해준 대부분의 단체는 클래식 발레 컴퍼니다. abt에서 그레이엄 작품을 공연한 키스 로버츠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그레이엄을 발레 댄서가 추는 것은 ‘현대무용가가 잠미녀를 추는 것 같다’고 했다. 댄서들의 항의문에는 모단체가 기준을 제시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그레이엄 작품을 다른 단체가 공연하면 ‘그녀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미적 가치가 심각하게, 그리고 영원히 파괴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논쟁에서 프로타스와 그레이엄을 지지하던 안나 키셀고프(타임)는 그레이엄 센터가 기능을 멈췄지만 ‘다행히도 그레이엄의 작품은 다른 단체가 무대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보존에 대한 이야기다. 춤은 기록 상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과 다르다. 문학은 텍스트로, 음악은 스코어로 존재하지만, 춤은 살아있는 몸을 매개로 하며, 이들 몸이 기억하고, 다른 이에게 전수하는 동안만 존재한다. 이는 그레이엄을 포함한 안무가들이 그들이 할수 있는 한 오래도록 안무를 계속한 이유다. 그들이 멈추면 컴퍼니는 위축되고, 그들의 작품은 더이상 공연될 수 없게 된다. 서구 문학의 고전은 bc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서구 춤의 고전은 ad 19세기이다. 그레이엄이 자신의 작품이 죽는 것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춤의 역사적 법칙에 순응한 것은 이상하게 보인다. 그레이엄의 180작품 중, 40개만이 재연 가능하다(다른 것은 레파토리에서 탈락되어 사라졌다). 그건 충분하다. 마리우스 프티파의 75개 작품 중 4개만이 살아남았다.
최근 들이 그레이엄과 발란신 등의 예에서 보존은 무용계의 이슈가 되었다. 움직임을 상징으로 기록하는 무보 시스템이 정비되었다. 필름과 비디오테이프도 활용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안무가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프레이징이나 정신을 기록한다고 할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는 오직 한 공연의 기록이며 그것도 나쁜 공연일 가능성도 있고, 오직 외부로부터의 한 시점만을 보여준다.  무보는 이보다는 낫지만, 무보에서 중요한 것은 코칭이다. 댄서가 존중할만한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이 프레이즈에서는 이부분에 액센트를 넣어봐’ ‘아치의 에너지를 이런식으로 풀어봐’ ‘여기가 중요한 순간이야’ 라고 말해야 한다. 그 역을 춘 경험이 있고, 확신과 열정이 있으며, 새로운 캐스트와 소통할 때 자긍심을 가진 사람이 코치를 해야 하는 이유다.

춤이 레파토리에 살아남고, 훌륭한 코치가 있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 코치는 자신의 특질에 맞춰 작품을 바꾸고, 그것을 적용하여 취향의 변화에 맞춰 유지하면서 낡아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는 그레이엄의 춤에서는 논쟁이 될만하다. 왜냐하면 그레이엄을 둘러싼 성스러운 아우라가 있고, 충분한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다 연극적 시대의 산물이다. 잠미녀는 1890년 이후 리바이벌 되었지만 ‘클래식’으로 남아있고,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다. 오리지널 텍스트가 없는 것이 문제일 뿐. 근대 극장 감독은 햄릿을 공중 화장실 배경으로 할 수도 있다. 다음 감독이 세익스피어 텍스트로 되돌리고 싶다면, 본인의 결정대로 하면 된다. 잠미녀 프로덕션 제작자은 자기가 본 것만을 안다. 드라마는 바퀴축(텍스트)에서 뻗어나오는 바퀴살(프로덕션)로 이루어진 바퀴이다. 춤은 끝을 향해 줄줄이 이어진 사슬이다.
이 룰을 뛰어넘기 위해, 발란신 재단은 발란신의 오리지널 댄서들이 발레를 코칭하는 것을 영상화하고 있다-그가 원한 것(바퀴축)의 기록이다. 국회 도서관이 그레이엄에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레이어드 필름-공연, 리허설, 그레이엄의 코칭, 오리지널 댄서가 그 역의 풋워크를 코칭하고 그레이엄이 원한 바를 말하는 것을 전부 포함한다. 이 새 기법은 비용이 들지만, 제 구실을 할지 모른다. 오늘날에도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낡은 수법이 여전히 힘이 있고, 안무가가 죽은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강의 모양은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레이엄의 모단체는 필요한가? 그녀의 걸작은 반세기의 나이를 먹었고, 대다수의 코칭을 그만뒀다. 게다가 아직 컴퍼니의 감독인 자넷 에일버는 ‘40년대와 신체가 다르다. 테크닉이 바뀌었고 발전했다. 그리고 관객도 다르다’고 한다. 그녀 생각에 그레이엄의 작품은 새 지도가 필요하고 몇몇은 새 프로덕션도 필요하다-오리지널의 정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국회 도서관의 필름 작업을 도우며, 그녀는 컴퍼니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말한다. ‘나이든 댄서들은 컴퍼니가 30년간 방치한 핵심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프로타스가 오기 전까지. 모단체는 나이든 댄서가 만나고 젊은이를 지도할 공간이다. 그것이 사라진 것이며 컴퍼니가 이대로 문을 닫으면, 이를 할 장소가 없다.

그레이엄 센터 위원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레이엄이 죽은 뒤, 그녀의 춤에 대한 권리는 그녀의 유언장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여름, 뉴욕 변호사 협회는 프로타스와 위원회를 중재하며, 춤의 소유권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레이엄의 시대에 춤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춤이 누군가의 재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정’(필름이나 무보로)되야 한다고 명기한다. 그레이엄의 작품은 이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작품들이 공공 재산일 가능성을 의미한다.  나아가 켄달리(그레이엄 센터 변호사)는 ‘그레이엄이 춤들을 그레이엄 센터의 고용인으로써 만들었고, 작품은 그녀가 아닌 센터에 귀속된다. 그녀는 고용인이었고, 봉급을 받고 세금을 냈다’고 한다. 퀸(프로타스의 변호사)은 이 도전은 ‘마사의 유산을 강탈하려는 무리의 최후의 발악’이라고 말한다. ‘프로타스는 모든 소유권을 가지며,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강도다’ (이 도전은 무용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발란신의 작품도 거의 ‘고정’되지 않았다)

그레이엄 스쿨은 1월 16일에 다시 문을 열었고, 라디오 시티 뮤직홀을 리노베이션한 건축가 하디가 63가의 그레이엄 스튜디오를 디자인했다. 프레스톤에 의하면 프로타스가 허가하건 말건 컴퍼니는 올해 다시 춤을 출 것이다. 학교가 문 열기 전에, 프로타스는 그레이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막는 금지명령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었다. 지금 그는 지금 몇몇 위원과 과거 센터 감독과 함께 소송을 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열린 결말이다. 어떻든지 화제의 당사자 마사 그레이엄의 유령은 불쾌하진 않을 것이다. ‘바로 지금 그녀는 자기가 만든 혼돈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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